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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고파 빵을 훔치게 된 장발장, 빵을 훔쳤다는 이유로 장기복역을 하게 되고 복역 중 형기를 마치고 출소하게 된다. 전과자라는 신분으로 끊임없이 위치를 보고하고 생활의 어려움을 겪던 장발장은 미리엘 주교의 도움으로 성당에서 따뜻한 음식과 잠자리를 제공받는다. 하지만 눈앞에 보이는 은촛대를 훔쳐 달아나다 잡혀 또 한 번 감옥에 수감될 위기에 처하지만 미리엘 주교의 선처로 풀려나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자신을 바꾸게 된다. 그 후 신분을 바꿔 한 도시의 시장까지 된 장발장은 팡틴이라는 여인을 만나고 그의 딸을 부탁받아 돌봐준다. 그 당시 출소자는 이동하는 위치와 자신의 신분을 항상 당국에 보고를 해야 했는데, 신분을 바꿔 생활하는 장발장을 수년간 뒤쫓던 형사 자베르에게 계속 추적을 당한다. 프랑스혁명 전투 도중 장발장은 혁명세력의 주동자 마리우스를 구해주지만 자베르에게 붙잡히고 만다. 하지만 자베르는 장발장의 혁명도들과 민중들의 헌신에 자신이 믿고 있던 법의 이념과 충돌하다 충격을 받고 자살하게 된다.
1. 레미제라블로 알아보는 프랑스혁명의 역사
레미제라블은 1860년대 프랑스 문학작가 빅토르 위고가 쓴 대하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현대의 사람들은 뮤지컬과 영화로 유명하다. 프랑스혁명정신을 가장 잘 대표하는 이미지를 꼽자면 외젠 들라크루아라는 화가의 '자유의 여신이 민중을 이끈다'와 더불어 레미제라블에서 마리우스가 빨간 깃발을 들고 바리케이드 위에 올라가서 ‘Do you hear the people sing’을 부르는 장면을 많이 연상한다.
프랑스는 사람 3명만 모이면 혁명을 한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워낙 혁명을 자주 했기 때문에 프랑스 문학작품이라던지 영화를 보고 있자면 이 혁명이 정확히 몇 년에 일어난 혁명인지 쉽게 알기 어렵다.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1789년 혁명과 레미제라블에서 묘사되는 1832년에 실패로 끝난 민중봉기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알고 보면 훨씬 더 재밌게 영화를 볼 수 있다.
2. 1789년 프랑스 시민혁명
레미제라블에서 표현한 1832년 시위와 다르게 1789년의 시위는 민중혁명이 아닌 시민혁명이었다. 현재는 어느 나라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이 그 나라의 '시민'이란 자격이 주어지지만 이 당시에는 말 그대로 도시에서 태어난 사람만 '시민'이라는 자격을 부여받았다. 그 당시에는 농사가 가장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나라와 마찬가지로 인구의 대다수는 농민이었다. 때문에 시민은 아주 적은 숫자였다. 이 시민계급은 중세기부터 끊임없이 더 좋은 조건을 얻어내기 위해 왕들과 싸운 일들이 많았고 자신들의 권력을 더욱 키워나가기 위해 권력형 혁명을 주도했다.
3. 1832년 6월 민중봉기
브루봉 왕가가 왕권을 다시 쥔 후 초기에 민중들은 왕가에 대한 반기를 들지 않았다. 이유는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나 나폴레옹의 독재에 신물이 난 상태였기 때문에 민중들은 혁명을 해도 세상은 변하지 않을 거라는 환멸 주의에 빠져있었기 때문이다. 이뿐만이 아니라 더 중요했던 원인은 안정을 원하는 중산층 계급의 성장을 들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중산층이 늘어나게 된 것은 1792년 급진파였던 자코뱅들의 업적이다. 자코뱅들이 귀족들과 수도원, 성당이 가지고 있는 땅을 빼앗아서 사람들에게 나눠줬고 그 결과 쁘띠 부르주아라고 불리는 소자산층의 규모가 굉장히 늘어나게 된다. 이 사람들은 잃을 것이 생겼기 때문에 옛날에 무일푼 시절과 달리 용감하게 혁명에 가담하기보다는 조금씩 개혁을 통해 천천히 나라를 바꿔가는 것을 더 선호했다. 때문에 브루봉 왕가는 1815년부터 1830년까지 정치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브루봉 왕가 중 두 번째 왕인 샤를 10세가 큰 실수를 하게 된다. 이런 소자산층의 기반으로 왕권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잊고 혁명도들이 압수했던 땅을 다시 귀족 가문의 후손 또는 성당이나 수도원에 복구시키겠다는 얘기를 하면서 쁘띠 부르주아들이 등을 돌리게 되고 또 한 번의 혁명이 나게 된다.
또한 1832년에는 민중들이 자발적으로 일어난 민중봉기로 표현되는데 이때 당시 유럽에는 콜레라가 유행하여 경제, 생활이 모두 마비되어 가난한 민중들은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었다. 요즘 코로나로 겪는 경제난과 위험을 생각하면 그때 당시의 민중의 마음을 조금 더 쉽게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4. 레미제라블, 왜 우리는 이혁명을 기억할까
1780년, 1830년, 1832년, 1834년, 1848년 수많은 혁명이 있었음에도 32년에 발생했던 실패한 민중봉기에 사람들은 왜 집중하고 기억하는지 그 이유에 대해 이해하고 해석할 필요가 있다. 다른 혁명들은 대체로 한 기득권이 다른 기득권과 싸운 것으로만 해석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1789년 혁명은 대상인과 귀족 간의 싸움이었고, 1930년 혁명은 오를레앙 왕가의 세력들과 부르봉 왕가의 세력들의 싸움, 1848년은 오를레앙 왕가의 세력들과 보나파르트 왕가의 세력들의 싸움이었다. 1832년의 혁명만이 정말 가난한 사람들이 그 고통스러운 상황과 괴로움을 참지 못하고 폭발하여 발생한 혁명이었던 것이다. 민중들의 아픔과 괴로움, 그리고 배고픔으로 일으켜낸 혁명이었고 비록 실패로 돌아갔지만 그 많은 혁명들 중 주목받고 이야기가 계속 전해지는 데에는 큰 의미가 있다.
정치권에게는 국민의 생활과 마음을 하나의 시선이 아닌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볼 것을, 국민들은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어 나를 보호하고 더 나아가 우리 가족을 보호하며 권리를 찾아가는 것이 국민의 권리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새기게 해주는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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