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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의 진짜 의미는 자본가에게 기생하려 했던 사람들의 모습보다도 더 깊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1. 수석의 다양한 의미
영화 초반, 기우의 친구가 전해준 수석은 영화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영화 안에서 수석은 매우 다의적인 메타포이며 따라서 한 가지의 의미로만 해석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의미를 동시에 갖고 있다. 수석을 처음 가져오는 민혁은 수석에 대해서 '집안에 재물운과 합격운을 가져온다'라고 설명한다. 수석은 이렇게 '운과 요행'이라는 상징을 갖고 있으면서도 '무질서인 자연의 돌에 수석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소유함으로써 통제'하려는 인간의 '계획'을 의미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수석의 본질은 '평범한 돌'인 것이다. 영화에서 수석이 가진 돌이라는 본질은 기우가 갖는 인간이라는 본질과 같은 맥락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평범 한돌'이 운 좋게도 선택받아 수석이라는 이름으로 기택이네 온 것처럼 기우도 '과외선생'이라는 명분으로 박사장 네 집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기우는 거짓말이라는 요행을 계획으로 자신의 가족들을 박사장의 집으로 하나씩 불러 모으게 되고 비가 내려 반지하집에 물이 차오른 상황에서도 기우는 수석을 끌어안는다. 기택은 무계획이 계획이라며 이미 패배감에 젖어있지만 기우는 여전히 수석이 상징하는 '요행과 계획'을 끌어안고서 박사장의 집으로 가게 된다. 기우가 자신에게 돌이 달라붙는다며 수석을 끌어안는 장면과 더불어 수석을 들고 지하실로 가는 장면들은 다분히 상징적인 장면이다. 스토리의 흐름상으로만 봤을 때 자연스럽다기보다는 어색하게 여겨지는 장면이지만 이것은 반대로 영화에서 수석이 갖는 상징과 의미가 그만큼 중요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박 사장 집의 지하실에 들어간 기우는 '요행인 동시에 계획'인 돌을 지하실 바닥에 놓치게 된다. 그러면서 자신의 '요행이자 계획'인 돌에 뒤통수를 맞고 쓰러지게 되는 것이다. 영화는 반지하에 살고 있는 기우의 모습으로 시작해서 다시 반지하로 돌아온 기우의 모습으로 끝이 난다. 돌이 다시 자연의 물속으로 돌아가는 장면처럼 기우 역시 반지하의 집으로 돌아가게 된 것이다. 결국 영화 속에서의 수석은 '요행과 계획'으로 삶을 바꿔보려던 기우라는 인물 자체를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2. 인디언, 냄새, 모스부호
영화에서 인디언이란 소재는 박사장 네 아들 다송이 본 귀신에서부터 시작됐다. 다송이 그리는 그림들은 모두 지하실의 남자인 근세의 몽타주이며 다송은 집을 지키기 위해 컵스카우트에서 모스부호를 배웠고 미국에서 만든 인디언 활을 쏘며 인디언 텐트에서 잠을 잔다. 자신들의 땅을 지키려던 원주민들의 저항정신이 정복자인 미국인들에 의해 놀잇감으로 상품화되어 소비되고 있듯이 지하실에서 버튼을 머리로 내리치며 문광의 위독함을 전하려 했던 근세의 절규 섞인 모스부호 메시지는 자본주의의 정복자에게는 한낱 놀잇감에 불과하기 때문에 다송은 모스부호를 해석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은 것이다. 영화 속에서 박사장과 기택은 다송의 생일 축하를 위해 인디언 분장을 한다. 박사장에게 인디언은 놀이지만 기택에게 인디언은 불편한 업무이다. 강자에게는 놀이이지만 약자에게는 현실인 것이다. 인디언은 바로 기택과 같이 자신의 자리를 잃고 내몰렸던 미국의 원주민과 같은 '약자와 불평등'의 상징인 것이다. 기택이 박사장을 찌르게 되는 결정적인 이유는 냄새로 자신들을 구분 짓고 보이지 않는 선을 그으며 혐오를 내비쳤기 때문이지만 기택이 미국의 원주민인 인디언 분장을 하고 있었던 연출의 이유에는 기택 역시 인디언과 같은 약자였기 때문일 것이다. 결말에서 근세처럼 지하실에서 지내게 된 기택은 모스부호를 통해 기우에게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이 모스부호는 근세와 기택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 위치한 하류층의 목소리와 메시지는 보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도록 이미 사회가 구분되어 있음을 은유하고 있다.
3. 기생충의 진짜 의미
영화의 초반 기택은 집안에 꼽등이가 많아졌다며 꼽등이를 손가락으로 튕겨내곤 한다. 꼽등이는 기생충인 연가시의 대표적인 숙주이다. 그러고는 많아진 꼽등이를 박멸하겠다며 소독약을 그대로 집안으로 들이게 되는데 꼽등이가 박멸되었는지는 영화에서 보여주지는 않는다. 카메라는 소독약에 콜록거리는 기택의 가족들 중에서도 유일하게 의연한 태도를 보이는 기택을 보여줄 뿐이다. 결국 숙주인 박사장 네 집으로 기택 일가의 전부가 기생하는 데 성공하지만 집사였던 문광이 돌아오면서 박사장 네 기생하고 있던 두 집 안 사이에는 다툼이 일어나게 된다. 영화의 클라이맥스인 다송의 생일날 지하실에서 올라온 근세의 분노는 자연스럽게도 기생충 자리를 놓고 다툼을 벌이던 기택의 가족에게로 향하게 되고 오늘날의 현실을 반영하듯 근세의 칼에는 여성인 기정이 희생되고 만다. 그리고 근세는 박사장에 거 존경한다 외치지만 박사장은 그의 냄새에 코를 막으면서 근세의 몸에 깔린 자신의 차키를 가져갈 뿐이었다. 그런 모습에서 기택은 근세에게는 동질감을 박사장에게는 혐오와 분노를 느끼고 딸을 죽인 근세가 아닌 박사장을 칼로 찌르게 된다. 영화의 결말에서 기택은 근세가 살던 지하실로, 기우는 반지하로 돌아온다. 기택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지하실에서 살겠다 말하고 기우는 자신이 돈을 벌어 그 집을 사고 말겠다고 말한다. 기생충의 진짜 의미는 박사장에게 기생하려 했던 두 가족들의 모습이 아니라 각기 다른 방식으로 자본주의 사회에 순응해버린 기택과 기우의 모습일 것이다.
4. 기생충으로 풀어낸 다양한 사회적 모순
높은 언덕에 위치한 박사장 네 집과 마을 아래에서도 반지하인 기택이의 집. 높낮이를 표현한 수직적 구도는 계층 간의 차이를 물리적인 높이로 하여금 잘 보여주고 있다. 비가 내려 캠핑이 취소되자 박사장 가족은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들이 오기 전 문광과 기택의 가족들은 지하실 벙커에서 서로 올라오기 위해 사투를 벌이게 되고 이때 지하실 계단을 서로 올라가려는 상승의 이미지는 그들의 욕망과 상승을 갈망하는 현 시대상을 은유하는 장면으로 해석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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